AI에게 먼저 물어보는 서비스 기획이 위험한 이유

AI를 열면 빈 화면이 뜹니다.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 습관적으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런 서비스를 기획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같은 질문을요.
답변은 순식간에 나옵니다. 시장 조사부터 사용자 분석, 경쟁사 비교, 기능 우선순위까지 그럴듯한 단계들이 나열됩니다. 거기서부터 작업을 시작하면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착각에 가깝습니다.
AI 답변으로 시작하면 놓치는 것
AI가 제시한 프레임에 맞춰 작업하다 보면 어느새 원래 풀고 싶었던 문제가 흐려집니다. "사용자가 이런 불편함을 겪고 있어서 이걸 해결하고 싶다"는 출발점이 "AI가 제시한 5단계 프로세스를 완수해야 한다"는 목표로 바뀝니다.
상사가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라고 던진 아이디어에 맞춰 자료를 찾고 논리를 끼워 맞추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AI로 기획을 시작하는 건 그것과 비슷합니다. 답을 먼저 받아놓고 그에 맞는 근거를 찾아 나서는 거죠.
도구가 방향을 정하는 순간
문제는 AI가 틀린 답을 준다는 게 아닙니다. 원하는 답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일을 답에 맞춰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비스 기획자는 의뢰자의 생각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서비스를 구체화시켜야 합니다. 스티브잡스의 말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 당신이 보여줄 때까지”와 같습니다.
서비스 기획자는 기획의 과정에서 요구사항을 정확히 알기 위해 질문하고 답을 들으며 확실 해 질때 까지 20고개를 합니다. 그리고 유저 시나리오, 화면 설계를 보여주면서 원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이와 같은지, 의뢰자가 생각했던 방향과 일치하는지 확인해 나갑니다.
AI는 어떻습니까? 한 번에 자세한 내용을 적어주면 결론을 도출합니다. 되묻는 과정이 없으므로 말로 표현 못한 생각 속의 그것을 드러내기 전에 다른 생각을 주입시킵니다. 나의 생각을 추가 입력하여 정확한 답을 얻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답을 줄 수 있을지 답에 질문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답을 주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그 답변들은 일반적인 케이스에 적용 가능한 평균값입니다. 지금 만들려는 서비스의 특수성, 해결하려는 문제의 맥락, 제약 조건 같은 것들은 반영되지 않습니다.
"모바일 커머스 앱을 기획한다"고 물으면 AI는 장바구니, 결제, 리뷰 시스템 같은 일반적인 요소들을 나열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왜 또 다른 커머스 앱이 필요한가", "기존 앱들이 놓치고 있는 사용자의 어떤 맥락을 포착했는가" 같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들은 AI 답변에서 출발하면 뒤로 밀립니다.
핵심은 질문에서 나온다
서비스 기획은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일입니다. 상상하고 구체화하는 일입니다. "이 사용자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이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진짜 이유는 뭘까",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같은 질문들이요.
이 질문들은 현장을 관찰하고, 사용자와 대화하고,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 만들어집니다. AI는 이 과정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질문이 명확해진 다음에야 AI가 쓸모 있어집니다. "이런 사용자 행동 패턴을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비슷한 문제를 다룬 해외 사례를 찾아줘" 같은 구체적인 요청을 던질 수 있으니까요.
보조 수단으로서의 AI
핵심을 먼저 잡으면 AI는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반복적인 리서치를 빠르게 처리하거나, 놓친 관점을 확인하거나,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서가 바뀌면 AI가 방향을 정하고 사람이 따라가는 구조가 됩니다.
기획자의 역할은 AI가 줄 수 없는 것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맥락을 읽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요. 이것들은 도구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가
AI를 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묻는 질문은 내가 먼저 고민한 결과인가, 아니면 고민을 대신하려는 시도인가."
만약 "이 서비스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요"라고 묻고 있다면,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할 타이밍입니다. 대신 "왜 이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누구의 어떤 문제를 풀렸는가"를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AI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때 AI는 상사가 아니라 보조가 됩니다.
도구는 도구로 써야 합니다. 상사처럼 섬기기 시작하면 일의 주도권을 잃습니다.
정리에 활용하자
클라이언트가 전달한 요구사항과 사업계획서를 기반으로 PRD (Product Requirements Document, 제품 요구사항 문서)를 작성하라는 것은 좋습니다. 유사 서비스가 있는지 조사하고 처음 접하는 업종의 서비스는 어떤 사용성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히기 좋습니다. 유사 서비스가 복수개 있을 경우 메뉴를 분석하고 공통 메뉴와 구별된 메뉴를 나누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보조를 10명 두고 일하는 것처럼 AI를 활용하면 좋습니다. AI의 상사가 되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처리하게 하는 것이 AI를 서비스 기획에 활용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